화폐역사 – 금본위제에서 법정화폐 탄생까지

화폐역사 – 금본위제도

화폐역사적으로 금은 상품화폐의 왕으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분리성과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단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금을 비축하고 있다가 실물금 대한 청구가 들어오면 이를 금과 교환해 주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금본위제는 각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일정량의 금액에 고정시켰습니다.

1922년 미국 달러 금 교환증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금본위제가 사라지게된 원인은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전쟁으로 군수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화폐의 유통을 늘이다 보니 지체의 총량에 비해 금의 보유량이 부족해졌습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 결과 화폐제도로부터 금본위제가 사라지고 각국이 모두 관리통화제도를 채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제간의 결제에서는 여전히 금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브레튼 우주 체제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그리고 관세 전쟁과 제 2차 세계 대전 기간 내내 많은 나라들은 금을 버리고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했습니다.
1944년 세계 각국 정상들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트 우즈 호텔이라는 곳에 모여 앞으로 어떤 국제 통화 시스템을 만들지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전 후 한때 전세계의 금 70%를 보유한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본위제를 채택하기로 결정됩니다. 이것을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합니다.
이 협정의 내용 중 금 교비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브레튼우즈 개념을 그린 이미지
출처: 막토의 코인이야기

“모든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일정 비율로 고정시킨다. 미국은 35달러당 1온스의 금에 고정시킨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일종의 변종 금본위제로서, 달러만 일정 비율에 금과 고정하고,
다른 통화들은 달러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정시킨 채, 금에 대한 청구에는 제한적으로만 대응하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협약은 1971년까지만 지속되었습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복지국가 건설 모두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미국 정부의 재정상황은 한층 더 불안정해졌으며 그결과 달러를 유통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1958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 된 샤를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통화정책부분에도 역점을 두었습니다.
드골은 화폐로서의 금을 매우 높게 평가 했으며 미국에게 달러 채권을 금으로 교환해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였습니다.
1969년 취임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불가피하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겠되었습니다.
결국 1971년 8월 15일 TV담화를 통해 “달러를 금으로 바꿀 수 없다”라고 공포했습니다.
브레트 우즈 체제는 시작부터 그 구조가 부실했습니다.
법정 화폐가 달러를 통해 금과 고정되어 있긴 했지만, 은행들이 대출을 일으킬 때 금을 보유하지 않고도 빌려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지급 준비 제도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법정 화폐가 창출되는 즉, 신용 창조의 메커니즘과 금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 청구권이 달러의 양이 미국 재무부 금고에 보관된 금 보유량을 빠르게 넘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은 그대로인데 달러만 팽창한다는 걸 눈치챈 외국 채권자들은 미국의 달러를 반납하고 금을 회수하여 재무부의 금고를 고갈시키게 되고,
이 과정은 교환비를 급격히 올려 달러의 가치를 절하거나 교환 자체를 막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페트로 달러 체제

1974년 석유파동이 터지자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국가들과 석유는 반드시 달러로만 판매한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중동의 군사 보호와 무역 협정을 제공했습니다.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의 탄생입니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전을 담보하는데 대가로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로만 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달러 화폐와 석유 채굴 장비가 합쳐진 이미지
출처: 블록미디어

 

페트로달러 체제하에서는 달러가 특정 석유 가격과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국가라면 반드시 달러가 필요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석유 수출국들의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인 보편적인 수요를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던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자국 통화를 지속적으로 발행하고 가치를 절하하는 한편, 금이나 미국 국채, 기타 외가 자산을 지급 준비금으로 보유함으로써 자국 통화 가치를 뒷받침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산들은 자국 통화에 급격한 약세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군사력 증강과 중동 석유 자원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강력한 배팅이었지만,
90년대 초 소련의 몰락 이후에도 이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은 미국의 실수였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구조적인 무역 적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 내 산업 기반이 황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중국을 비롯한 여러 제조업 국가들이 미국에 맞서 이 제도를 반대로 이용했습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대안

잠재적인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대안들은 여러 국제기구나 싱크 탱크들, 국제결제 시스템의 밸런스를 다시 맞추자는 의견이 제한되고 있고, 지정학적 여건의 변화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지난 몇 년간 수출 석유의 결제를 부분적으로 유로로 책정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무역 상대국 중 일부와 함께 시장 지배력을 넓힐 수도 있는 디지털 통화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 1위 원자재 수입 국이 아니며,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기존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더욱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도입되기까지 달러의 변천과정을 보고 그 대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대안으로 생각해 볼 만한 옵션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안은 석유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를 거래할 만한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달러 외의 주요 통화 몇 개를 더 추가하는 것.

2안은 금, 비트코인, 디지털 특별인출권 등 희소성을 지닌 중립 준비 자산을 통해 석유를 결제하도록 하는 것.

 

신용으로 강제된 법정화폐의 탄생

종이 화폐가 금을 이기다!

달러 화폐 뭉치들의 이미지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통신 기술의 발달과 근대국가 및 은행 시스템, 그리고 글로벌 무역의 출현입니다.
즉, 부족 국가가 왕국이 되고, 왕국이 민족 국가가 됨에 따라 근대적 의미의 은행이 만들어지고, 통신기술 등 기술 혁신으로 인해 글로벌 무역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종이 화폐가 화물 운송 대금 등을 결제하는 데에 큰 관여를 하게 되면서, 상품 화폐, 금, 은보다 더 쉽고, 빠르게 송금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니 화폐의 휴대성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 것입니다.
금은 거래를 위해 반드시 손에서 손으로 넘겨 줘야 하지만 금 청구권이란 추상화된 형태의 종이 화폐 즉, 은행간 장부 시스템은 지구 반대편까지 빛의 속도로 돈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분할성이 주요 경쟁력이 있던 은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금은 은행과 중앙은행의 금고에 쌓이기 시작하면서 금과 은은 일상생활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스텝은 정부에 의해 발행된 종이 화폐를 전국민이 강제로 사용하도록 종이 화폐의 법적 의무를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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